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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못하는 네덜란드인, 데니스 베르캄프 이야기(2)FOOTBALL STORY/PLAYER 2013. 7. 13. 21:28
인테르에서 베르캄프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헐값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의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마시모 모라티의 비웃음과 더불어. 등번호 10번. 역대 가장 재미없는 아스날 축구를 구사한 몇몇 감독들 중 하나였던 브루스 리악 감독이 아스날을 위해 가장 큰 공을 이룬 것이 바로 베르캄프의 영입이라고 했을 정도이니 에이스 10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라고 볼 수 있었다. 리그에서 11골 이상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비웃음을 베르캄프는 EPL 데뷔 시즌에 보란듯이 뒤집어 놓는다. 1995/96 시즌 미들즈버러와의 개막전에 데뷔했다. 데뷔전 이후 6경기를 연속 선발 출장하지만 베르캄프는 이렇다 할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인테르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는 듯했다. 언론의 압박은 당연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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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못하는 네덜란드인, 데니스 베르캄프 이야기(1)FOOTBALL STORY/PLAYER 2013. 7. 10. 17:11
필자가 축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는 네덜란드, 멕시코, 벨기에와 E조에 속해있었다. 우리나라의 첫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당시 왼발의 달인으로 불렸던 하석주가 멋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거친 백태클로 퇴장을 당했던 기억까지.(가린샤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득점한 선수가 퇴장당하게 되면 등재되는 센츄리 클럽과 같은 개념이다. 브라질의 가린샤가 초대 멤버이다.) 이후 두번째 경기에서 네덜란드와 마주쳤다. 이때 네덜란드의 기세는 대단했다. 항상 유럽축구의 강호로 군림하고 메이저 대회에 나오면 우승후보들 중 하나로 손꼽히던 네덜란드였기때문에 상대적 약체였던 우리나라를 상대로 융단폭격을 터뜨렸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어 팬들에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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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트사커의 위대한 서막, 1998년 프랑스 월드컵FOOTBALL STORY/CLUB & NATION 2013. 5. 15. 15:54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포스터 프랑스 아트 사커가 화려하게 등장한 첫 대회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이였다. 총 174개의 팀이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에 참여하였고 32개 팀이 본선 조별 예선에 진출하였다. 대회 직전까지만해도 전년도 우승팀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브라질이 역시나 우승 후보 0순위로 지목되었고 역시 개막전 또한 전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이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고 조별 예선 2승 1패로 무난하게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굵직하게 이끌고 가던 브라질이였기에 누구나 쉽게 우승은 브라질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8년 월드컵 브라질 선발 라인업 그러나 개최국 프랑스가 속한 C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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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뿌리 깊은 전쟁LEAGUE NEWS/EUROPE 2013. 5. 14. 21:37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 사이의 경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쓰인다. 카탈루냐어로는 엘 클라식(El Classic)이 되며 간혹 엘 수퍼클라시코(El Superclasio, 클라시코의 뜻을 한층 더 강화함), 엘 그란 데르비(El Gran Derbi, 큰 더비)나 엘 데르비 에스파뇰(El Derbi Espanol, 스페인의 더비)로 불리기도 한다. 중남미의 스페인어권에서는 엘 클라시코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미의 다른 더비 경기들과 구분하기 위해 엘 데르비라고 더 자주 불린다. 스페인 역사에 남겨진 유명한 스페인 내전은 엘 클라시코의 역사를 가르는 큰 기준이 됐다. ⇒ 첫 경기는 1902년 5월 13일,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의 전신인 코파 데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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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나락에서 정상까지, 칼치오폴리의 역경을 딛고 일어난 왕의 귀환.LEAGUE NEWS/EUROPE 2013. 5. 13. 22:18
2002/2003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같은 리그 소속인 AC밀란과 혈투를 벌이며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배하며 마지막 키커였던 안드리 셰브첸코의 포효를 바라보며 잔디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던 유벤투스. 결승전에서는 패배했지만 그해 시즌의 리그는 유벤투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다음 시즌에는 리그에서 밀란이 왕좌를 차지하며 확실하게 유벤투스의 콧대를 눌렀다. 절치부심한 유벤투스는 이후 04/05 시즌에서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뱃지)를 빼앗아왔다. 05/06 시즌마저 유벤투스가 스쿠데토를 유지하며 명실상부 유벤투스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06년 어느날. 당시 유벤투스의 단장이였던 루치아노 모지가 심판배정관이었던 파울로 베르가모와의 전화통화에서 유벤투스에게 우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