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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지못하는 네덜란드인, 데니스 베르캄프 이야기(2)
    FOOTBALL STORY/PLAYER 2013.07.13 21:28

      인테르에서 베르캄프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헐값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의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마시모 모라티의 비웃음과 더불어.


     등번호 10번. 역대 가장 재미없는 아스날 축구를 구사한 몇몇 감독들 중 하나였던 브루스 리악 감독이 아스날을 위해 가장 큰 공을 이룬 것이 바로 베르캄프의 영입이라고 했을 정도이니 에이스 10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라고 볼 수 있었다.


      리그에서 11골 이상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비웃음을 베르캄프는 EPL 데뷔 시즌에 보란듯이 뒤집어 놓는다. 1995/96 시즌 미들즈버러와의 개막전에 데뷔했다. 데뷔전 이후 6경기를 연속 선발 출장하지만 베르캄프는 이렇다 할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인테르에서의 부진이 이어지는 듯했다. 언론의 압박은 당연했다.


    아스날에서의 첫 시즌

      하지만 1995년 11월 23일 아스날의 홈구장 하이버리(현재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사우스햄턴을 상대로 두 골을 뽑아내며 EPL 첫 골과 더불어 연속득점을 기록한다.이후 리그에서 9골을 보태며 정확히 11득점을 했고(리그 출장 33경기에 인테르에서의 두시즌동안 기록한 득점과 동일하다!) 리그컵 경기에서 8경기를 출전하며 5득점을 하며 총 41경기 16득점을 만들며 아스날을 리그 5위에 올려놓고 다음 시즌 UEFA컵(유로파 리그의 전신) 출전권을 획득한다.


      그리고 1996년 11월 프랑스 리게 앙, 일본 J리그에서 감독생활을 하던 '교수' 아르센 웽거 감독이 아스날에 부임하면서 베르캄프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더불어 아스날 본연의 공격적인 축구 색깔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96년 아스날에 부임한 아르센 웽거


      웽거 부임 이후 두시즌에서 76경기 36득점(경기당 0.47득점, 97/98시즌 40경기 22득점)으로 네덜란드 아약스에서 보여주던 최고의 모습을 다시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97/98 시즌에 잉글랜드 무대 진출 이후 첫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아스날을 프리미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PFA 올해의 팀, FWA 올해의 축구선수상,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골 등을 휩쓸며 잉글랜드 무대 진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당시 아스날에는 대표팀 동료였던 '로켓맨' 마르크 오베르마스, 숀 라이트 필립스(현 QPR)의 양아버지이자 잉글랜드의 골게터 이언 라이트, 거너스(아스날의 애칭)의 방패 토니 아담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으나 리그, 컵 등 가리지 않고 대활약을 펼쳤던 베르캄프가 모든 상을 휩쓸었기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웽거의 부임은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97/98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어졌던 1998년 여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 네덜란드를 4강에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대회 당시 베르캄프가 터뜨린 세 골 중 8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골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만큼 엄청났다. 후반 44분 연장전에 접어들 것만 같던 경기양상을 띄며 양 팀은 연장전을 준비했다. 그때 네덜란드 진영에서 프랑크 데 보어의 발을 떠난 공이 아르헨티나 페널티박스 아크에서 기다리던 베르캄프의 발에 정확히 안착했고(정확히 말하면 베르캄프의 엄청난 퍼스트 터치로.) 프랑크 데 보어의 패스를 포함한 단 네 번의 터치로 아르헨티나의 그물에 슈팅을 꽂아넣었고 베르캄프는 피치 위를 미끄러지며 포효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의 환상적인 골


      4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하고 3,4위 전에서 돌풍을 일으킨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1-2로 패하며 4위의 성적으로 월드컵을 마무리지었다. 뜨거웠던 98년 여름을 지나 98/99 시즌이 시작됐다.


      베르캄프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즌이였다. 40경기에 출전하여 16득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팀내 두번째 다득점자)했지만 리그 우승컵을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게 내주고 FA컵 준결승전에서 맨유를 만나 연장혈투 끝에 패하여 아스날이 탈락했고 베르캄프에게는 악몽이 되버렸다. 선수생활 전체에서 공식경기(승부차기 포함)에서 줄곧 페널티킥을 전담해 100%의 성공율을 자랑하던 '페널티킥의 대가' 베르캄프가 레이 파울러가 필 네빌의 반칙으로 얻어낸 페널티킥이 '맨유의 수호신' 피터 슈마이켈(당시 유럽 전체에서 손꼽히던 덴마크 골리였다. 퍼거슨 감독마저 슈마이켈 같은 체격과 실력을 가진 골키퍼는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에게 완벽하게 막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슈마이켈의 신들린 선방에 힘이 빠진 아스날은 하프라인 좌측에서 우측으로 보내는 힘없는 횡패스를 당시 '퍼거슨의 아이들'의 일원이였던 라이언 긱스가 잽싸게 가로채며 일명 '매직 드리블'로 회자되는 골을 선보이며 아스날을 '멘붕' 시키고 FA컵 결승에 진출한다. 베르캄프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페널티킥 '실축'을 경험했고 이후 그는 페널티킥을 '절대로' 차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할때까지 차지 않았다.





      이 시즌 맨유는 리그, FA컵, 유럽 챔피언스 리그 세 개의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트레블을 작성했고 잉글랜드 클럽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개인적으로 이 시즌 맨유의 스쿼드가 맨유 역사상 최고 스쿼드가 아니였나 싶어요.) 이때문에 베르캄프의 실축은 더욱 뼈아팠다.


    98/99 시즌을 기점으로 아스날은 상당기간 침체를 겪게된다.

    EPL에 맨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웽거가 아스날에 변화의 칼을 빼들게 된 시기에 접어든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마지막 편이 되겠습니다.)


    1편을 보시려면 오른쪽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 https://bit.ly/2IiGCKi


    * 본 포스팅은 '오늘의 해외축구' 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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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쓰는 남자, 더 풋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