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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두아르도] '크리스마스 휴전 토너먼트 대회'와 유소년 축구 교육.
    SPECIAL REPORT 2013. 11. 22. 23:21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아니, 추워졌다. 부쩍 짧아진 해만큼 어느 새 2013년도 점점 저물어간다. 해 지나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지인들의 연락이 조금씩 온다. 카페에서는 다소 이르다 싶은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카운터에는 2014년 다이어리가 놓여져 있다. 카카오톡에는 온갖 세일 정보와 크리스마스 프로모션을 알리는 메시지가 밀려든다. 그다지 반갑지도 않은데 말이다. 어찌되었든 '행복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복된 새해'를 노래할 날이 훌쩍 다가왔다는 건 분명하다.


     모태솔로가 아닌 이상 크리스마스가 인류의 축일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자에게는 그들의 신이자 성자께서 태어나신 거룩한 날이며, 연인들에게는 뜨거운 밤이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솔로라고 한들 따뜻한 이부자리 혹은 가족과의 단란한 식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외출이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는 날이다. 그 날의 이벤트가 공식적인 것이든 지극히 사적인 것이든 간에, '그 해 크리스마스'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는 의미있는 날인 것은 분명하다.


     그 해 크리스마스. 정확히 말하자면 백년 전 크리스마스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상한 광기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을 휩쓸고 있던 그 해 크리스마스다. 그 때, 그 곳의 어느 들판에서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축구에 '아주 깊은'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저들이 웃으며 축구를 즐기고 있는 저 곳은 전쟁터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하에 1460일 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던.

    (출처=www.getaroundglasgow.co.uk)



    절망 속에서 찾는 희망, 크리스마스 휴전.


     1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지는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그 숫자들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상투적이다. 한 병사가 일기장에 썼다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 정도면 이 전쟁의 참상을 설명하기 충분하다.


    우리는 무자비한 숙명의 희생자로서 애국해야만 했다. 우리는 본연의 가치관과 인간성을 상실했다. 우리는 마소 같은 짐바리 동물로 전락했다. 무관심하고 무감각해서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짐승이 되어 버렸다.’


     소설『서부 전선 이상없다』를 읽은 사람이라면, 전쟁 초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상 속에서 이 전쟁을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는 자와 떠나는 자 모두 이상한 열정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열광과 환상이 광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얻은 것은 애국자로써의 명예가 아니라 그들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비인간성이었다. 

    미하엘 유르크스의 저서,『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의 표지에 사용된 사진이다. 찌들어 있는 얼굴에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절망 속에서 축구를 통해 희망을 노래한 주인공들이다.

    (출처=http://history.howstuffworks.com)


     크리스마스 휴전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참상 속에서도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류애가 실현되었다는 데 있다. 20세기 초의 어떤 위대한 정치가도 해내지 못했던 평화를 잠깐이나마 실현시켰던 것은 그 날 무인지대에서 공을 차고 놀았던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었다. 쥐와 이, 파리 떼가 가득한 칙칙한 참호 안에서 그보다 더 음울한 절망에 빠져 있던 병사들은 무인지대 건너편에 있는 이라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저 건너편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나지 않을까 하는 '초극세사 같은'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희망은 세상이 '적과 동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닌, 모두 '같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역사를 간직하는 또 하나의 방법, 축구.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가 축구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오늘날 축구는 그 역사를 기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많은 축구팬들이 EPL 중계방송을 통해 경기 전에 1차세계대전 추모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수 차례 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며,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기 좋은 곳 중 하나인 축구 경기장에서 이루어지는 추모식은 더 많은 임팩트를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와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이 가슴에 양귀비꽃 문양을 달고 경기를 하며, 몇몇 선수들은 축구화에 그 문양을 새기고 경기에 나서기도 한다. 스포츠의 전시효과를 활용한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의미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식 고취가 경기 전의 단순한 이벤트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축구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도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사례가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경기에 앞서 Remeberance Day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출처=http://www.dailymail.co.uk)


     최근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유소년 축구 문제 때문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EPPP(Premier League's Elite Player Performance Plan)라는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일정 중에는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휴전 토너먼트(the Christmas Truce Tournament)'라는 대회에 참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름에서부터 상징성이 느껴지는 이 유소년 축구대회는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잉글랜드 뿐 아니라 주요 참전국이었던 프랑스, 독일, 벨기에의 유소년 팀들도 참여한다. 그리고 각 국의 프로 클럽 유소년팀(U-12) 중에서 두 팀이 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의 취지는 분명하다. 참가국의 유소년 축구 발전과 어린 선수들에 인성 교육 효과다.


     대회에 참여하는 어린 선수들은 대회 전에 여러 교육자들을 통해 크리스마스 휴전과 1차 세계대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또 저녁에는 만찬도 가진다. 직접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만찬 마지막에는 선물을 교환한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장에서 보면, 이 어린 선수들이 상대편 선수들에게까지 화이팅을 외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휴전이라는 한 사건만을 가르치는 단순한 역사 교육이 아니라, 그 사건을 지배하는 정신을 아이들이 직접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저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가 아니라, 어린 선수들의 인성과 동업자정신까지 고양하는 교육의 장인 셈이다.  


    잉글랜드 대표로 출전할 팀을 선발하는 대회에 참여한 유소년 선수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출처= http://www.premierleague.com)



    대륙 반대편에 주는 크리스마스 휴전의 교훈.


     전쟁터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평화, 그리고 그 정신을 '축구'를 통해 교육하는 것은 대륙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는 단순한 역사 인식 문제가 아니라 선수 인성 함양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특히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SNS 사건, 폭력 사건 등으로 내홍을 겪었던 한국 축구계에 어떤 일침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선수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우리 선수들 중에는 정말 본받고 싶을 정도로 멋진 선수들이 훨씬 많고, 반면 유럽에도 기행을 일삼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 정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 유소년 축구계가 어린 선수들에게 승부만을 가르치는지 귀감이 되는 좋은 선수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지다.


     크리스마스 휴전이 위대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은 영국군과 독일군이 느꼈던 '어떤 동질감'이 그들에게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 사고에서 벗어나 '같은 인간'이라고 인식했다는 점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축구는 스포츠이기에 승부가 필수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곳에서 함께 뛰는 선수들은 '같은 사람'이기에 페어플레이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상대를 존중할 때, 더 멋진 승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승리와 경쟁의식만을 가르치게 되면 이러한 부분을 깨우치지 못할 수도 있다. 적대감 속에 형성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선수들이 어찌 즐길 수 있겠는가. 어떤 인재를 양성할 것인지보다 어떤 인성을 가진 인재로 자라나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어떤 기량을 갖춘 선수를 양성하는 것보다는 어떤 인성을 갖춘 선수로 자라나게 할 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본 포스팅은 축구팬의 완소앱, [오늘의 해외축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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