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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 Superstar (1)FOOTBALL STORY/PLAYER 2013. 9. 16. 16:05
모든 관중이 숨을 죽인채 프리킥을 준비하는 등번호 7번이 적힌 스킨 헤드의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공을 놔두고 몇걸을 뒤로 물러나 2초 가량 멈춰있다가 힘차게 달려가 공을 찬다. 공은 멋들어지게 휘어 골대 왼쪽 그물을 흔들었다.
남자는 관중석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 점프하며 오른팔을 하늘로 내질렀고 큰 대자를 그리고 서서 포효한다. 관중석은 이미 광란의 도가니.
스킨 헤드의 이 남자는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인 그리스전에서 2대1로 끌려가며 본선 진출의 꿈이 물거품이 되기 일보 직전, 모든 정규시간이 끝나고 인저리 타임 3분에 얻어낸 프리킥은 당시 지역 최종 예선 같은조에 속해있던 독일이 네덜란드와 0대0의 스코어로 경기가 종료되 잉글랜드가 패하게 될 경우 플레이오프를 통하거나 최악의 경우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을 뒤집어놓게 된다.
이 극적인 프리킥 골은 베컴의 커리어에 길이 남을 골이 되었고 그 의미를 더했던 것은 소속클럽이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레포드라는 것이다.
극적인 동점골로 잉글랜드를 본선에 올린 베컴의 프리킥
수많은 프리킥의 대가들이 있음에도 우리는 '프리킥' 하면 베컴을 떠올린다.(많은 팬들, 베컴의 골수팬인 나도, 프리킥은 미하일로비치라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늘 극적인 상황에서 그의 프리킥이 골대 그물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프리킥뿐만 아니라 코너킥, 크로스 등 먼거리로 공을 정확하게, 적당한 세기로 받아낼 수 있도록 보내주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소위 말하는 택배 크로스, 국내팬들 사이에서는 '백암택배' 라고 불리기도 한다.)
베컴은 1975년 5월 2일 잉글랜드 런던의 레이튼스톤에서 태어났다.(풀네임은 David Robert Joseph Beckham) 미용사였던 어머니와 배관공인 아버지, 누나와 여동생이 있는 잉글랜드의 아주 평범한 가정이였다. 축구 종주국답게 여느 아이들처럼 베컴도 축구에 흥미를 보이며 집 주변에 있던 리지웨이 공원에서 공을 차며 꿈을 키웠다.
그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날 학교 수업 시간 도중 베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축구하는 사람이요.' 라고 그가 대답했고 이 대답에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는 말이라고 하자 '내가 정말 가장 하고 싶고 원하는게 축구인데요.' 라고 다시 이야기했다고 한다. 축구선수가 아닌 '축구하는 사람' 그저 축구자체가 좋았다는 것이다.
축구하는 사람이 되고싶다구요!!
축구가 하고싶은 베컴은 런던을 연고로하며 자다가도 이름을 들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열정적인 외할아버지가 응원하는 토트넘 핫스퍼의 유스캠프에 참여하게 됐고(이때부터 베컴과 토트넘의 인연은 시작된다.) 처음 정규 클럽의 유스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짧은 기간 토트넘 핫스퍼 유스팀에서 활동을 하다가 브림스다운 로버스라는 유스 클럽에 입단한다. 그리고 1991년, 베컴이 16살이 되던 해 어느 겨울이였다.
런던이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북부 지방인 맨체스터 연고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열정적으로 응원하던 아버지의 권유로(이 결정은 토트넘에 입단하기를 원했던 장인어른, 즉 베컴의 외할아버지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를 대표하던 전설인 보비 찰튼 축구 교실에 참가한다.
수많은 잉글랜드 내에서 공 좀 찬다하는 또래들이 이 축구교실에 참가했고 베컴 또한 그 중 일원으로 속해있었다. 너무 많은 참가자들로 인해 각자가 실력을 뽐낼 시간이 얼마 없었던 와중에 베컴이 공을 다루던 도중 보비 찰튼이 직접 그 장면을 목격했고(리프팅을 하던 중이였다.) 그 몇 번의 터치는 찰튼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보비 찰튼이 선정하는 축구교실 우수 선수로 선정된다.(우리나라로 치면 차범근 축구대상과 비슷한 것이다. 영국에는 이런게 제법 많았는데 보비 찰튼 축구교실은 아주 대표적인 것이다.)
보비가 선정한 최고의 선수
이 일로 인해 1991년 겨울, 베컴이 16살 막바지가 되던 때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던 알렉스 퍼거슨으로부터 유스팀 입단 제안을 받았고 베컴의 아버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베컴의 계약에 적극 동의했고 퍼거슨과 베컴의 아버지가 함께한 자리에서 베컴이 직접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에 대해서 베컴의 아버지는 장인어른 몰래 진행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베컴 자신의 인생에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알렉스 퍼거슨과 데이비드 베컴
약 2년간 유스팀에서 머물며 1992년 5월 FA 유스컵 결승전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이후 첫 득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브라이튼 앤 홉 알비온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퍼스트팀 벤치 멤버로 교체 투입되며 경기에 뛰게된다.
퍼스트팀에는 베컴이 뛸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스무살이 된 베컴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중 당시 3부 리그 소속이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로부터 임대 제의를 받았고 퍼거슨 감독은 베컴의 선발 출장 기회를 늘리고 경험을 쌓게 하고자하는 의도로 단기 임대를 보냈고 1994/95 시즌 임대를 가게 된다.
프레스턴에 단기임대를 온 베컴
안정적인 출전기회가 주어졌고 프레스턴 오른쪽 미드필더는 베컴의 자리였다. 등번호는 4번. 3개월 가량의 임대기간 동안 베컴은 출전할때마다 프레스턴의 세트피스를 전담했고 5경기에 출전하며 2득점을 기록하는 등 짧은 기간 프레스턴에 강한 흔적을 남긴다.(특히 코너킥으로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
프레스턴 임대기간 베컴의 활약상과 흔적들
짧지만 인상 깊었던 임대 기간이 종료되고 맨체스터로 돌아온 베컴은 1994년 12월 7일 19살 베컴은 터키 갈라타사라이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통해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했고 퍼스트팀 경기를 뛴 이래 처음으로 골을 기록한다.
맨유 퍼스트팀에서의 첫번째 골
임대 복귀 후 총 10경기를 뛰며 그 중 챔피언스 리그에서 기록한 득점이 시즌 유일한 득점이 된다. 그렇게 94/95 시즌이 끝이 났다.
다가올 95/96 시즌 본격적으로 베컴의 이름이 퍼스트팀 스쿼드와 퍼거슨 감독의 라인업에 올라가기 시작한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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